<콘클라베> 밀실에서 뽑힌 교황이 신의 뜻이라는 허상

전 세계 10억 명이 넘는 가톨릭 신자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도자 선출 과정이 있다. 그런데 이 중대한 절차에서 평범한 신자는 단 한 사람도 참여하지 못한다. 교황 선출회의, 일명 콘클라베는 오직 추기경들만이 참여하는 폐쇄적 비밀회의다. 장소는 바티칸의 한 구석, 철저히 차단된 공간이다. 겉으로는 전통과 경건함을 내세우지만, 그 실상은 시대착오적인 폐쇄성과 비민주성이다.

‘콘클라베’는 라틴어로 ‘열쇠로 잠근 방’을 뜻한다. 말 그대로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교황을 뽑는 구조다. 투표권을 가진 약 120명의 추기경만 입장할 수 있으며, 이들은 모두 과거 교황들이 임명한 엘리트 성직자다. 전 세계 신자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인물을 뽑으면서, 일반 신자는 물론 대부분의 성직자조차 완전히 배제된다. 이런 구조는 현대 국가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의 비민주적 의사결정이다.

가톨릭 교회는 늘 “성령의 인도 아래 최선의 선택이 이루어진다”며 교황 선출 과정을 신성시한다. 새 교황이 뽑히면 “신이 선택하셨다”는 말로 결과를 신격화한다. 하지만 그 이면은 다르다. 겉으로는 기도와 찬송이 흐르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줄다리기와 연합이 오간다. 추기경들은 개혁과 보수 사이에서 표 계산을 하고 전략을 짠다. 결국 교황은 신의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정치적 타협으로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과정을 “신의 뜻”이라는 한마디로 미화하는 것은 신앙을 빙자한 위선이다.

콘클라베의 철저한 비공개성과 의도된 신비주의는 교회 권력 구조를 고착시키는 수단이다. 외부의 견제나 감시는 철저히 배제되며, 선출 과정은 기득권 성직자들의 권력을 지키는 방패막이로 기능한다. 이는 마치 중세의 성 안에서 소수 귀족들이 군주를 추대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교회의 권력은 여전히 소수 내부자들끼리 나눠 갖는 구조로 유지되고 있다.

오늘날에도 평신도나 하위 성직자는 지도자 선출에서 철저히 배제되며, 신자들은 결과를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요구만 받는다. 이러한 일방적 권력 구조는 민주주의 시대의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국민주권과 투명성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교회만 과거의 특권 체제를 고집하는 건 시대 역행일 뿐이다.

교회는 “종교 조직은 세속 국가와 다르다”고 변명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대착오적 방식으로 지도자를 선출하고도 세계인의 존경과 신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만약 콘클라베가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다면, 그 대가는 교회의 도덕적 권위 상실로 이어질 것이다. 시대는 이미 변했다. 밀실에서 태어난 교황이라는 이 모순을 교회가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