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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의 성범죄, 거룩함 뒤에 숨은 면죄부는 없다.

퍄노순댕 2025. 4. 12. 08:57

충격적인 현실로 드러난 ‘거룩한’ 범죄

최근 앤서니 피어스(84)가 과거 교구 사제 시절 저지른 성범죄를 자백하고 징역 4년 1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법정에서 피해자는 “지금까지도 수치심과 당혹감을 생생히 기억한다”며 “그가 내 인생이 이렇게 된 데에 큰 책임이 있다”고 분노를 표출했다. 성직자의 탈을 쓴 범죄가 남긴 상흔은 깊고 고통스럽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건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 곳곳에서 성직자에 의한 성범죄 추문이 반복되고 있지만, 교회의 대응은 여전히 늦고 미흡하며, 때로는 조직적인 은폐로 일관해왔다.

종교 권위를 방패 삼아 책임을 회피하다

가해 성직자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를 범죄의 방패로 삼아왔다. 수많은 사례에서 성직자들은 신도들의 맹목적 신뢰를 악용해 범행을 저지르고도, 죄책감 없이 책임을 회피해왔다. 한 미국 조사보고서는 일부 사제들이 피해 아동에게 “이 학대는 ‘신의 뜻’”이라고 세뇌하고, “신부의 말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며 범죄를 정당화했다고 폭로한다. 심지어 발설하면 “가족이 지옥에 갈 것”이라고 협박한 경우도 있었다.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지위를 악용해 죄를 덮고 넘어가려는 이러한 파렴치한 행태는 피해자들에게 죄책감과 공포를 심어 침묵하게 만들었고, 가해자들은 그 성스러운 권위 뒤에 숨은 채 처벌을 모면해왔다.

조직적으로 사건을 축소·은폐하는 교회 구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범죄를 조직적으로 덮어온 교단의 은폐 구조다. 한 독립조사위원회는 프랑스 가톨릭교회에서 70년간 아동 대상 성범죄가 21만6천 건 발생했다고 밝히며, 교회 당국이 성직자 범죄를 체계적으로 은폐해왔다고 지적했다. 이는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조사 대상 6개 교구에서 300명이 넘는 ‘약탈자’ 성직자가 1,000여 명의 아동을 수십 년간 학대했고, 교회는 이를 숨겨왔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나왔다. 조사 과정에서 교회 수뇌부가 진실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매뉴얼”까지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교회는 범죄가 드러나도 조직 보호를 위해 사건을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고발이 들어와도 “가능한 한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거나 무시하며 시간을 끌고, 사법 처리 대신 내부 징계나 인사 조치로 얼버무리는 관행이 이어졌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 사제는 1960년대에 아동 성폭행을 자백하고도 교단이 경찰 대신 그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 “치료”를 받게 했고, 결국 전근 간 학교에서 20명의 아이들을 추가로 학대했다. 또 다른 신부는 한 교구에서 여러 건의 아동 학대 보고로 쫓겨났지만, 이를 다른 교구에 알리지 않아 다른 지역 본당에서 최소 6명의 어린이를 더 성폭행했다. 이런 식으로 가해자를 숨기고 옮기며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또 다른 무고한 아이들이 희생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피해자에 대한 배신: 보호 대신 침묵과 회유

교회는 겉으로는 “사랑과 자비”를 말하지만, 정작 피해자 보호에는 무책임했고 오히려 침묵을 강요하거나 회유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많은 피해자들은 성스러운 조직에 누를 끼쳤다는 왜곡된 죄책감에 시달리도록 방치되었고, 자신의 고통을 호소할 창구조차 찾지 못했다. 앞서 언급된 미국 보고서는 교구 지도부가 반복해서 피해 호소를 외면하고,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끝까지 쉬쉬했다고 밝혔다. 일부 피해자와 가족이 용기를 내어 성직자의 범죄를 교회에 알렸을 때조차, 돌아온 것은 가해자를 법에 넘기는 대신 내부 징계나 다른 본당 전출로 슬그머니 무마하는 처리뿐이었다. 은밀한 합의와 금전적 보상으로 입막음을 시도하거나, 아예 피해자 측에 “교회의 명예를 위해 조용히 넘어가자”는 식의 압력이 가해진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 결과 피해자들은 오랜 세월 고통 속에 입을 닫아야 했고, 가해 성직자들은 거짓된 성직의 위신 아래 계속해서 존재해왔다.

반복되는 추문, 미온적인 교단의 대응

그동안 폭로된 성범죄 추문은 국적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가톨릭 교회 전반에 만연해 있었다. 미국, 유럽, 호주에서 수만 건의 피해 사례가 밝혀졌고, 최근에는 포르투갈에서 4,800여 명의 피해자가 있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교황청과 각국 교구의 대응은 더디고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톨릭 교회 수뇌부는 뒤늦게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내놓곤 했지만, 이는 터져나오는 여론을 진화하기에 급한 임시방편으로 비치곤 했다. 실제로 교황청은 아동 성학대 은폐 문제로 강하게 비판받을 때까지도 내부 회의 결과를 함구하거나 구체적 조치를 공개하지 않았다. 교황도 취임 초기부터 “무관용”을 천명했지만, 정작 성추문 가해 성직자들에 대한 처벌에 미온적이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일부 주교나 추기경 등 고위 성직자가 연루된 사건에서도 교황청은 늑장 대응으로 일관하거나 솜방망이 조치에 그쳐왔다. 그 사이에도 비슷한 성범죄 사건은 끊이지 않고 터져 나오며, 교회 내부 자체적으로는 문제를 근절할 의지나 능력이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다. 더 나아가 교회는 외부의 개혁 권고마저 종종 거부하며 자기 보호에 급급했다. 한 예로, 호주에서는 수년간의 왕립조사 끝에 “고해성사 중 아동학대 고백을 들으면 당국에 신고하도록 하라”는 권고가 나왔지만, 호주 가톨릭교회는 “전통과 종교의 자유”를 내세우며 이를 끝내 거부했다. 교황청 역시 “고해성사의 비밀은 절대 침해될 수 없다”며 국가의 법적 요구에도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교단 차원에서 자정 노력보다 조직 보호를 우선시하는 태도가 이어지는 한, 성폭력 근절과 재발 방지는 요원해 보인다. 교회의 미온적 대응은 결과적으로 가해자들에게 또 다른 면죄부를 주고, 피해자들에게는 또 다른 절망을 안겨줄 뿐이다.

철저한 외부 감시와 책임 추궁이 답이다

이제 종교적 권위가 범죄의 면죄부가 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거룩함을 가장한 범죄에는 그 어떤 관용도 있을 수 없다. 교회가 스스로 변화하지 못한다면, 외부의 철저한 감시와 공적 개입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실제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와 메릴랜드주 등에서 주 정부 차원의 조사와 그랜드 저리 보고서가 나오자, 비로소 수십 년간 숨겨졌던 진실이 드러나고 가해 성직자들이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되었다. 시민사회와 사법당국의 독립적 조사는 교회가 숨기려 했던 자료를 공개시키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이끌어내어 정의 구현의 물꼬를 텄다. 성범죄를 저지른 성직자는 평범한 범죄자와 다름없이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하며, 이를 은폐하거나 묵인한 교회 책임자들 역시 법적·도의적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 더 이상 교단 내부의 온정적 처리나 은밀한 사과만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피해자 중심의 개혁이 절실하다. 교회 제도와 문화를 피해자의 목소리를 최우선으로 변화시키고, 2차 피해를 막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독립적인 감시기구를 두어 교회 내 성범죄 사건을 투명하게 조사하고 공개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은폐에 가담한 이들은 교회 법뿐 아니라 세속법으로도 처벌받게 만들어야 한다. 종교는 결코 법과 상식 위에 군림할 수 없다. 부패한 권위를 끝없이 용인하면 신앙마저 공허해진다. 이제는 가톨릭교회가 스스로 뼈를 깎는 개혁을 하든지, 아니면 사회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들이든지 둘 중 하나다.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죄악에 더 이상 면죄부는 없다는 것을 전 세계 가톨릭 교단은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